5.18 역사기행 후기 - 제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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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5.18
제선웅
어제는 5.17이다. 5.18 하루 전이다. 그리고 오늘은 5.18이다 억 ᄏ 어쨌든 어제 기상 당번하면서 느끼는 건대 오늘 광주 가네 올해는 3년 연속 간다. 2020년에는 어린이학교에서 가고 작년에는 현대민주화 운동에서 가고 올해는 학교에서 특활로 간다. 뭔가 지겹다기보다는 갈 때마다 새로운 느낌? 그래서 아침에는 출발하는데 정말 차가 좁았다.
그리고 혜숙 샘, 현지 샘, 지 민 선생 말 정말 많으시다가는 내내 이야기를 1초도 쉬지 않고 이야기하신다는 그렇게 험난한 과정을 지나 광주에 도착한다. 첫 도착지는 5.18 자유공원이다. 1980년도에는 상무대였다. 상무대는 소위 중위 대위 즉 진급하기 위해서는 꼭 필수로 해야 하는 곳이다. 5.18 기념관과 영창, 군사재판 등이 있는데 영창과 군사 재판장은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그 부분이 좋았다. 전남도청은 리모델링해서 너무 아쉬웠다. 아무튼 해설가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다른 분들이 해설해주신다고 해서 바뀌셨다. 이유는 바뀌신 분들이 5.18 그 당시 실제로 상무대에서 잡혀가셔서 고문을 당하신 분들이라고 하신다 어떻게 보면 우린 운이 되게 좋은 거다. 그때 다른 학교에서도 굉장히 많이 자유공원에 왔다.
그리고 감옥 구경을 하는데 전에 가본 곳이라 대충 보고 나오고 고문이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 충격적이었다. 밥을 너무 안 줘서 물고문하는 물을 삼킨다는 물 배를 채우려고 그렇다고 한다. 고문 이야기를 듣고 군사 재판장으로 갔다. 고문당하시고 시위 하신 분들은 빨갱이로 몰리시고 사형선고 받으신다. 하지만 1, 2년 뒤 전두환이 풀어 줬다고 한다. 모순인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설명을 듣고 점심 먹고 전일 빌딩을 가는데 어린이학교 때 간 곳을 보는
그냥 갑자기 울컥해졌다. 그렇게 전일 빌딩을 도착하고 올라가고 다시 내려가고 관람하고 나오고 국립묘지를 갔다. 가기 전에 보던 다큐멘터리가 생각나서 묘지를 자세하게 봤다. 돌아가신 사연 중에 헌혈하러 갔다가. 돌아갈 때 계엄군 총에 맞아 돌아가신 사연을 보면 더 기억해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구 묘지 갔다가 이재명 님을 보는데 가족이다. 전남 출신이라 신기했다. 구 묘지는 신 묘지에 묻히기 거부 하신 분들도 있다고 들었다. 나라가 5.18을 일으켰다. 그런데 신 묘지는 나라가 만들었다. 그래서 거부하셨다고 한다. 구 묘지는 5.18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도 묻히셨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백남기 열사가 묻혀계신다. 푸룬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히츠페터 분의 손톱과 머리카락이 묻혀계신다. 광주에 묻히길 원하셨는데 시체 대신 손톱과 머리카락이 묻히시고 무덤에 돌탑이 많이 쌓여 있었다. 민주 돌쌓기라고 적혀져 있길래 나도 쌓았다. 그리고 모든 일정이 끝나고 학교 가는데 잤다. 그리고 샘들이 깨웠다. 난 그때 학교 도착한 줄 알았다. 근대 휴게소였다. 심지어 1시간 20분 남았다. 해서 더 절망적이었다. 그리고 근희 샘가지 포함해서 4분이 되신 샘들은 각성하셔서 더 떠드셨다. 난 ㄸ 잤다 자고 나니 학교여서 좋았다. 힘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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